같은 슬픔 다른 추모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2018.07.31
노회찬 국회의원이 하늘에 별이 되었다. 안타까움에 몸서리치고, 슬픔에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세상을 덮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절절히 사랑하는 줄 알았다면 그리 훌쩍 떠났을까 싶을 정도다.

그가 떠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고백하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더듬는 것으로 그를 추모한다. 미디어는 연일 그의 현란했던 말솜씨와 감동적인 생애를 편집해 보여주고 장례식장에 모여든 유명인사들의 조문을 비춘다. SNS엔 “잘 가세요”, “평화로운 그곳에서 행복하세요” 하는 고별 맨트가 홍수다. 대한민국이 인간 노회찬을 추모하는 방식이다. 좋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2016년 6월16일, 조 콕스 (Jo Cox) 영국 노동당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1974년생. 아직 젊디젊었던 그녀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이라크전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난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녀의 활동에 극우주의자들은 불만이 많았다. 그녀의 지역구인 웨스트 요크셔의 Batley and Spen에도 극우주의자는 있었다. 그중 토마스 마이아 (Thomas Mair)라는 인물이 대낮에 조 콕스를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는 테러를 감행했다. 조 콕스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조 콕스는 초등학교에서 행정을 책임지던 어머니와 치약과 헤어스프레이를 만드는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방학 때면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에서 치약 포장 일을 하기도 했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제 자선단체 옥스팜에서 일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초당적 국회의원 모임인 All-Party Parliamentary Group 내에 ‘시리아의 친구들 (Friends of Syria)’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끌었다. 그러면서 시리아와 가자, 이라크 등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조 콕스는 낙후된 지역구 주민들의 삶에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의 여동생은 “조 콕스는 밤새 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도 잦았고 그러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올 때면 택시비가 없어 자신이 대신 내주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한민국이 노회찬을 추모하듯 영국도 그녀를 추모했다. 그런데 눈여겨 볼만한 차이가 있다. 조 콕스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 남편 브랜던 콕스 (Brendan Cox)와 조 콕스의 친구들은 조 콕스를 추모하는 최고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들은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에 ‘조 콕스 기금 (Jo Cox Fund)’ 페이지를 만들어 후원금을 모았다. 조 콕스가 가장 많은 애정을 가지고 지원하던 3개의 자선단체에 기금을 모아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노인을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Royal Voluntary Service,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서는 공동체 만들기’를 목표로 활동하는 Hope not Hate, 그리고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민을 구출하고 있는 White Helmets 이 그 대상이었다.  



조 콕스가 사망한 지 일주일도 안 돼 3만8천명이 참여했고 백만 파운드 (약 15억 원)가 넘는 기금이 모였다. 조 콕스가 일했던 옥스팜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녀를 추모했다. 그녀가 사망한 지 4일째 되는 날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콘서트에서 불린 노래를 모아 추모앨범을 발표했다. 그 수익금은 난민들을 위한 활동에 사용됐다. 그해 12월, 국회에서는 조 콕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여 롤링스톤스의 노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를 녹음했고 판매수익을 조 콕스 재단에 전달했다. 조 콕스 재단은 조 콕스의 뜻을 이어받아 시리아 난민 문제, 외로움과 고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다.
그녀의 죽음에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행위는 말 그대로, 품격있게 이어졌다. 노동당 국회의원이던 조 콕스의 사망으로 Batley and Spen 지역은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녹색당과 영국 독립당 등 거의 모든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것은 존경받던 한 정치인에 대해 정치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였다. 물론 후보를 내 봐야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예외적으로 정치권의 듣보잡, 자유 영국 (Liberty GB) 당이 후보를 내세웠다가 크게 패배했다. 역겹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보너스로 주어졌다. 보궐선거는 8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노동당 후보가 당선됐다. 

조 콕스의 사망 이후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이 조 콕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해 ‘세상 바꾸기’에 나섰다. 생전, 그녀는 ‘외로움’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며 그 해결책을 연구하는 대책 위원회 활동을 주도했다. 조 콕스 사후, 위원회의 이름은 ‘조 콕스 위원회’가 되었다. 집권 보수당의 대표이자 총리인 테레사 메이는 노동당의 정책을 받아들여 ‘외로움 부 장관’을 임명했다.  

그뿐이 아니다. 매년 6월이 되면 영국 전역에서 3일 동안 The Great Get Together라는 축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평소 소원했던 가족과 이웃이 모여 길거리 파티를 열고, 각종 장기를 자랑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식사를 나누는 등 12만 개 이상의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조 콕스를 추모하면서 동시에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행사다.  

조 콕스가 그랬듯 노회찬에게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 미완의 꿈은 산 자들이 이루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국화꽃 한 송이 영정 앞에 올리고 눈물 한 방울 떨구는 것으로 노회찬에 대한 추모의 예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미래 지향적이고, 실천적인 ‘추모’는 남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하늘나라에서 노회찬이 조 콕스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죽어서도 꿈을 이룬 당신이 부럽소.” 물론, 그다운 표현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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